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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쿤

[밤쿤] Wolf in the Gold Moon

[밤쿤] Wolf in the Gold Moon

w. 쿠엔


쿤은 마지막으로 남은 업무를 끝내고 후련함이 섞인 손짓으로 노트북을 닫았다.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허리가 뻐근했다. 처음에는 잠깐 일어나 있다가 저녁을 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내다본 바깥은 이미 시간이 저녁이 아닌 늦은 밤임을 알려주듯이 캄캄했다. 간간히 반짝이는 가로등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쿤은 저녁을 건너뛰기로 하고, 이런 저런 서류를 뒤지느라 엉망이 되어버린 방을 가볍게 정리하고 얇은 자켓을 집어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평소라면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아서라도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웠겠지만 오늘은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 제 동네에 어쩐지 시원한 바람이 저녁쯤부터 불고 있었다. 그래서 바람이라도 쐴 겸, 쿤은 루프탑 형식으로 꾸며진 옥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바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불어와 나무들을 흔들었다. 선선한 바람이었다. 내내 실내에만 있어 텁텁한 공기처럼 침체되었던 기분이 조금 상쾌해졌다. 쿤은 잠시 아파트들이 가득한, 야경이라고 할 것도 없는 풍경들을 내려다보다가 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바람이 부는 것 자체는 시원하고 좋았지만, 라이터의 불은 바람으로 인해서 자꾸 담배에 옮겨 붙기 전에 훅 꺼져 들어갔다. 몇 번 더 시도하던 쿤은 결국 작게 짜증을 내며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다른 한 손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담배를 가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제서야 라이터에서 터져 나온 불꽃이 담배에 옮겨 붙었다. 갈색이던 담배의 끝이 붉게 열기를 머금고 타올랐다.
 여전히 바람은 쿤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 정도로 불어오고 있었다. 쿤이 문 새하얀 담배의 끝에서는 담배만큼 얇은 한 줄기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바람이 불면 연기가 휘어지지 않나? 쿤은 의아한 눈으로 다시 담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었다. 바람이 약하지 않게 불고 있음에도, 담배 연기는 곧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쿤은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기의 끝은 어둑한 밤하늘로 곧게 올라갔다. 하늘에는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달이 무척이나 크고 가까웠다. 음력 날짜를 따지고 살지는 않아서 달이 언제 차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짜가 벌써 보름쯤이었나. 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크고 밝은 달이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달이 평소 하늘이라고 여기던 범주보다 가깝게 떠 있었다. 쿤은 별 하나 없이, 구름 하나 없이 달의 존재로 가득 찬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르는 구름이 없어 바람이 불고 있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멈췄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쿤은 다시 한 번 담배를 빨아들이며 달과 눈을 마주하듯 달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렇게 낮고 큰 달이 있구나.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달이 깜빡였다.
깜빡여? 쿤은 놀란 눈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흘러가는 구름도 한 점 없었다. 그런데 달이 깜빡이다니? 달은 눈동자가 깜빡이듯 빛을 숨겼다가 내뿜기를 반복했다. 피곤한가.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느낌이... 쿤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한 번 달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달에게서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달의 윗부분이 천천히 가라앉는가 싶더니 한 순간 달 자체가 두 개로 번뜩였고 순식간에 하늘에서 땅으로 하강했다. 쿤이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려는 순간, 묵직하고 차가운 공기가 쿤을 움직일 수 없도록 붙잡았다. 그 공기의 압박감과 낯설음이 온통 쿤의 주변을 휘감았다.
검은 아우라를 가진 무언가가 쿤의 주변으로 내려앉았다. 날카로운 흐름을 몰고 하강해 오던 것과는 달리 정지할 때 그 무언가는 쿤의 앞에 사뿐히 정지했다. 뭐지? 쿤은 아까보다 훨씬 더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채로 멍하게 입을 벌렸다. 최대한 앞의 무언가를 인지해보려고 눈을 가늘게 떠 보았지만 여전히 바람의 흐름으로 형체가 가려진 무언가였다. 쿤이 바람으로 휘청이는 몸을 가누며 천천히 바람의 중심으로 손을 뻗었다. 쿤의 손 끝이 바람에 닿자 순식간에 바람이 멎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올려다보고 있던, 금빛 달, 그 눈동자 한 쌍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 누구세요...?”

“지금 모른 척 하시는 거에요?”

네? 쿤은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바람을 몰고 온 무언가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훤칠하게 키가 크고,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새카만 옷으로 무장을 한 사람이었다. 멀쩡하게 생겨서 왜 하늘에서 내려와서는 이상한 소리를 한대.. 쿤은 아무리 봐도 수상한 남자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 몰라요? 제가 누군지?”

“저는 당신을 오늘 처음 보는데요.”

“저는 늑대이자 인간이에요. 보통 인간들은 수인, 혹은 늑대 인간이라고 저를 부르더라구요.”

수인? 쿤은 아주 예전에 소문처럼 돌던 말들을 기억해냈다.
보름달이 뜨는 날 늑대 인간이...

“그리고 당신은 수인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인간이죠. 당신의 눈이 제게 닿아서 제가 온 거에요.”

하늘에서 내려와서...

“당신을 보러 내려왔어요.”

사람을 잡아간대...

“이렇게 가까이서 인간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애초에 저를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인간은 생각보다 아름답네요. 반짝이고, 하얗고... 남자는 넋이 나간채로 굳어 있는 쿤의 뺨에 손을 올렸다. 인간의 체온보다 훨씬 높은 체온이 쿤에게 옮겨왔다. 쿤은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움직였다. 움직이려고 했다. 한 수 빠르게 쿤의 손목을 움켜잡은 남자가 씩 웃었다.

“바로 죽일 수도 있지만, 조금 흥미로우니까, 당신이라는 인간은...”

확 손목에 거센 힘이 느껴진다 싶었을 때 쯤 쿤의 시야가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갔다. 정신을 잃은 쿤의 몸에서 힘이 풀려 무너졌다.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쿤의 몸을 들어 안았다. 손목을 쥐었던 자리는 붉은 자욱이 나 있는 것과 다르게 쿤은 아까보다도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 아름다운 것들에 흥미가 많아요. 남자가 쿤이 듣지 못할 말을 속삭였다. 그리고 쿤을 여전히 품에 안은 채로, 한 번의 도약으로 다시 하늘과 건물 사이의 경계 그 어딘가로 몸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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