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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쿤

[밤쿤] 나의 이름은

-신의탑 60분 전력 '이름'

[밤쿤] 나의 이름은
w. 쿠엔

멈춰 있던 사고가 다시 돌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때였다. 온 몸이 부서져버릴 듯한 고통에서 해방되듯 숨이 트였다. 멎어버렸던 피가 돌듯이 온 몸에 열기가 흘렀다. 어둠으로 물들어가던 머릿속이 새하얗게 밝아져 왔다. 숨이 죽은 듯 생기를 잃은 듯 해 보였던 눈동자에 금빛 이채가 반짝였다.

“지금부터 네 이름은 쥬 비올레 그레이스야.”

듣고 있니? 비올레? 제 앞에 선 사람이 내는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듣고 있어요? 쿤 씨? 제 ‘네임’을 가진 당신? 그는 속으로 수 없이 증오로 되뇌었던 이름을 다시 한 번 입에 올렸다. 쥬 비올레 그레이스. 그토록 알 수 없었던 실마리가 스르륵 풀려나갔다. 당신이 가졌던 이름, 당신을 가질 사람.
그게 바로 저였다는 것을.


그의 몸에 새겨진 이름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쿤은 등대 두 개를 한 번에 조작하기 위해 등대에서 내려와 있던 상태였다. 그리고 문제는 그 때 발생했다. 우연히 쿤 팀의 일대일 마크에서 살짝 외각에 속해있던 상대편 팀원 한 명이 쿤에게 바로 공격을 날린 것이었다. 다른 팀원들이 전부 마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등대의 컨트롤만 신경을 쓰고 있던 쿤은 드물게 방어 태세가 흐트러져 있었고, 날아오는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 쓰러졌다. 순식간에 추락하는 등대에 고개를 돌린 팀원들은 피를 토해내며 무너지는 쿤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모두가 쿤에게 향해 오려는 순간 밤의 목소리가 그들을 붙들었다.

“아직 전투 중이잖아요! 전투에 신경 써 주세요. 쿤 씨께는 제가 가볼게요.”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는 팀원들은 그래도 밤의 말에 다시 전투에 임하면서 살짝 씩 뒤를 돌아볼 뿐이었다. 팀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고 팀의 전술에 큰 영향을 끼치는 등대지기인 쿤이 쓰러져버리자 팀의 균형 전체가 휘청였다. 밤은 급하게 제 겉옷을 벗어내며 쿤에게 다가섰다. 얼른 쿤에게 응급 처치를 해 주고 전투에 합류해야 했다.

“쿤 씨, 괜찮으세요? 지혈을...”

“아니야, 괜찮아. 밤, 내가 할테니 어서 다시 돌아... 가.”

“무슨 말씀이세요. 일단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니야. 돌아가 줘, 밤.”

쿤은 말 한마디조차 힘겹게 내뱉는 주제에 자꾸만 밤을 밀어냈다. 손에 힘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 바들바들 떨리는 쿤의 손은 가까스로 다친 복부의 옷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듯이 그러쥐고 있었다. 쾅! 뒤 쪽에서는 다시금 큰 폭파음이 들려왔다. 밤이 전투 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이 잠시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쿤은 다시 크게 기침을 내뱉었다. 피가 튀었다.

“쿤 씨!”

밤이 그제야 다시 쿤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쿤의 몸이 그대로 풀썩 무너졌다. 아직까지도 와이셔츠에서 손을 떼지 못한 모습이었다. 대체 왜 이런 데서 고집을 부리시는 거에요. 밤은 쿤이 듣지 못할 말을 나직이 뱉으며 쿤의 손을 잡아 내려놓았다. 잔뜩 피로 얼룩 진 옷을 들어 올려 상처가 난 부위를 지혈했다. 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밤은 제 겉옷을 쿤의 허리에 둘러 묶었다. 그리고 상처에서 난 피로 엉망이 되어버린 옆구리 근처를 닦아내다가 우뚝 멈춘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움직임 하나 섣불리 하지 못한 채.
밤! 쿤! 전투를 마친 동료들이 밤과 쿤이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헉, 헉 숨을 몰아쉬는 팀원들은 쿤이 누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야, 밤? 밤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무릎을 꿇은 그 상태 그대로 넋이 나가 있었다. 응급 처치를 했지만 쿤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전투가 끝나야지만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특성 상 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멈추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투가 끝났음에도 밤은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어서 데리고 가야지 이대로 있으면 어떡해 밤! 팀원들이 쿤을 바쁘게 업어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전히 자리에 주저앉은 밤의 뒤에는 마찬가지로 조금 굳은 표정의 이수가 있었다.

“.... 보셨어요?”

“밤.”

“네임이.. 왜 네임이...”

쿤은 정신을 잃었지만 곧 회복할 것이었다. 살펴본 상처는 안쪽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출혈량이 조금 많아서 정신을 잃었을 뿐. 쿤이 목숨이 위험했다면 당연히 다른 데에 눈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밤은 쿤의 상처가 깊지 않다고 판단하고 상처를 지혈한 후에, 상처에서 나온 피로 얼룩진 곁을 차분하게 닦아내었다.
그리고 밤은 피를 닦아내면서 피 속에서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새겨진 모양새가 분명히 그의 ‘네임’이었다. 제게 늘 노네임이라고 말하던 쿤의 몸에서, ‘네임’을 발견했다.
‘쥬 비올레 그레이스’라는, 낯설고 까끌한 이름을.


‘나는 노네임이야.’
‘정말요? 저도요!’

호선을 그리며 웃던 입술에 당장에라도 입을 맞추고 싶었다. 밤에게는 아직 네임이 발현되기 전이었기에 쿤이 노네임이라는 것은 그에게 정말이지 가장 황홀한 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밤에게 네임이 발현되었다는 것이었다.
쇄골 아래로 뚜렷하게 새겨진 이름은 ‘쿤 아게로 아그니스’ 였다. 몇 번이고 거울을 바라보아도 이름은 변하지 않았다. 심장에 새기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몸에 새겨져 버린 순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이름이 있는데, 당신은? 그 이후 밤은 쿤에게 수 없이 물었다. 정말 노네임이신거에요? 아직 발현이 되지 않으신 건 아닐까요? 거듭해서 물어오는 밤의 말에 쿤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검진하고 확실하게 이야기 들었어. 노네임이라고. 왜 자꾸 묻는 거야? 밤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요. 제가 생각해도 애써 웃는 웃음에는 힘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마침내 그의 몸에서 다른 이름을 발견한 순간, 모든 실마리는 풀리면서 동시에 꼬였다.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쿤이 병실로 옮겨져 정신을 차리는 동안 밤은 병실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다. 몇 번이고 이수에게 부탁해 ‘쥬 비올레 그레이스’에 대해 찾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만을 들었다. 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전투의 승패 대신의 밤에 대해 물었다.

“밤이 네 상처를 지혈하고 넋이 나가 있길래 너를 먼저 병실로 데려왔어.”

네가 다친 거에 아무래도 충격을 많이 받았나봐. 라고 말하는 팀원들 사이에서 쿤은 아무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알고 있었다. 자신만은. 왜 밤이 그렇게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기억은 밤에게 네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제 스스로의 옷을 손이 하얗게 세도록 붙잡던 그 순간이었다. 정신을 잃었으니, 분명 그가 봤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네임을 가진 사람에게서, 그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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