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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알

담알 마피아 au 01.

담알 마피아 썰

w, 쿠엔

 

타닥이는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박거리는 가로등이 선 담벼락 밑으로 검은 인영 하나가 주저앉듯 기대앉았다. 기다랗게 서 있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작아져 벽에 기대어 앉고, 어둡던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톡 톡 떨어지는 물방울이 조금씩 커져가는데도, 인영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어느덧 바닥에 골을 따라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 붉은 기운이 뒤섞인다. 불과 몇 시간 전 온 몸에 휘감은 핏물이,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백색의 눈동자가 멍하니 빗줄기를 내려다보았다. 어디로부터, 어디까지. 검게 물들인 머리카락에서도 검은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가면서 검은 색 사이로 흰 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항상 중요시하던 검은 색의 머리도, 높게 올려 묶은 머리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그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빗줄기가 쉴 새 없이 내렸다.

그 때 멀리서 지나가던 담은 걸음을 멈추었다. 옅게 올라오는 혈향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내리자, 정신없이 아래로 흘러내려 오는 빗물들에 핏물이 섞여 있었다. 다소 늦은 시간이었다. 누구지? 이 시간에? 담은 가려던 걸음을 틀어 천천히 언덕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언덕 위는 더 어두웠고, 무엇보다 수많은 집들이 하나같이 어둡게 비어있어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풍겼다. 무슨 일이 있었군. 그녀의 눈앞에서는 하나씩 집들의 불이 꺼져가는 장면이 선연하게 그려졌다.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언덕을 거의 다 올라갔을 무렵, 마주한 큰 집 앞의 담벼락에 인영 하나가 앉아 있었다. 호기심에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을 감고 있었다. 온통 검은 옷에, 소리가 거의 나지 않도록 만들어진 검은 신발. 높게 올려 최대한 불편을 줄인 머리, 그리고 그에게서 쏟아져 내려오는 핏물. 담은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 자신이 이 언덕을 올라왔음을. 머리는 검은 색이었으나, 위에서는 조금씩 흰 빛이 드러나고 있는 걸 보아 염색이었다. 검은 색의 물이 검은 옷을 적시고 있어 티가 나지 않을 뿐이었다. 담은 직감적으로 그에게서 무기를 찾아보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미 버렸나. 담은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여전히 가만히 앉은 채로 미동이 없었다. 곁에 누군가 다가오는 걸 모를 리 없었는데도. 아마 공격할 생각이 없거나, 이대로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거나, 혹은 둘 다. 담은 옆에 나란히 주저앉듯 무릎을 굽혀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를 켜는 타닥이는 소리에 남자가 드디어 눈을 떴다. 드러난 눈동자는 새하얀 빛이었다. 새카만 가운데 이질적으로 눈빛만이 흰 색으로 빛났다. 빛이 났지만, 공허했다. 담은 그 공백을 알아챘다. 이렇게 이 곳에 정처없이 주저앉아 있는 데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잃었거나, 배신당했거나, 혹은 둘 다. 공허함은 그런데에서 오는 법이었다,

알타이르는 비가 제법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에 실수도 없이 단 번에 담배에 불을 붙여 무는 담을 빤히 바라봤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연기는 빗물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퍼져나갔다. 담배의 알싸하고 깊은 장작같은 향이 퍼졌다. 알타이르는 다시 눈을 내리감았다. 옆에서는 숨소리 대신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고, 뱉는 소리. 그리고 담배가 작게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담은 잠시 눈을 마주한 알타이르가 다시 눈을 감는 것을 바라보며 담배를 마저 빨아들였다. 차가운 인상의 남자였으나, 마주한 눈에서는 어떤 살기도 느낄 수 없었다. 어쩐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이런 새벽에, 피를 잔뜩 묻히고 담벼락에 기대앉은 흰 백색을 감춘 남자를 만났기로서니, 이런 감정을 느낄 것까지 있나. 라고 담은 생각했으나 결심은 확고하게 굳어졌다.

 

“함께 갈래?”

 

한참만에 입을 뗀 것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말씨로 담이 말을 걸었다. 알타이르는 다시 눈을 떴다. 어느덧 시야를 흐리게 하던 눈물은 흐르지 않고 있었다. 또렷해진 시야 사이로, 아까는 담배를 보느라고 마주하지 않았던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다. 검은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분홍색 눈동자. 눈동자가 깜빡일 때마다 사라졌다가 드러났다. 매혹적인 색이었다. 분홍색 눈동자는 씩 휘어졌다. 이 상황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제게 함께 가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알타이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담을 마주보고 있었다. 어느 새 담배를 모두 피운 담과 알타이르 사이에서는 정적이 맴돌았다. 빗줄기가 둘 사이를 흘렀다.

 

“네가 원하는 걸 다 찾아줄 수 있다고는 말 못해. 하지만 함께 찾아줄 수는 있어.”

 

고민을 하며 잠시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알타이르는 놀란 표정으로 다시 담을 마주보았다. 대번에 제게서 상실을 읽어내는 능력이 놀라웠다. 문제는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찾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녀의 말은 반대로 그에게 찾아가고 싶은 것을 주었다. 어쩌면 따라가도 괜찮다는 생각, 모든 걸 잃은 지금 새롭게 무언가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타이르는 다시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여전히 웃음기가 있는 눈동자가 씩 휘어지더니, 이내 자리를 털고 먼저 일어나더니, 알타이르의 눈 앞으로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가자.”

 

알타이르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여전히 꺼질듯한 가로등은 깜빡였고, 그 사이로 두 인영이 나란히 길을 걸어 내려갔다.

 

 

 

 

 

담이 건넨 수건들로 머리부터 닦아내던 알타이르는 이내 진득하게 묻어나는 검은 염색약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미 다 흰 빛이 드러났을 것이다. 염색약은 잘 안 빠지는데. 그는 염색약이 묻은 수건들을 제 옆으로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뭐해? 담이 돌려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지만, 알타이르는 아직 덜 닦았다고 얼버무렸다. 담은 그런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었다. 워낙에 말수가 적은 편인지 말이 없어, 행동만으로 천천히 성격을 유추해나가는 중이었다. 생긴 건 고양이 같아선, 한 마디 말도 없이 얌전히 차에 실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 건 강아지 같았다. 이렇게 강아지를 주워 올 생각은 없었는데. 담은 머쓱하게 머리를 넘기다가, 이내 도착한 본부에 내려서 알타이르를 먼저 이끌었다.

 

“이 쪽이야. 우선, 좀 쉬어. 식사하고 싶으면 식당으로 내려오고. 진정이 되고, 갈 곳을 찾는다면 언제든지 나가도 좋아.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고 생각하라고.”

 

알타이르는 몇 개의 수건을 품에 안고 있다가, 자신보다 조금 낮은 눈높이의 담을 마주보았다. 대번에 바로 영입시켜 일을 시킬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애초에 원할 때 나가라는 이야기는 절대 영입할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슨 생각으로 날 데려오신 거지? 정말 잠시 쉬게 해주시려는 걸까? 알타이르는 끝없이 올라오는 의문을 속으로 삼킨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곧 들어선 방에서 알타이르는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무기를 몇 개 풀어두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단도와 작은 총을 숨겨놓은 가터를 풀고, 온통 젖어버린 옷을 모두 빨았다. 몸도 씻어내면서 머리도 다시 하얗게 되돌렸다. 알 수 없는 순간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알타이르는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서, 고민을 하면서 밤을 꼬박 새웠다. 따듯하고 아늑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담은 다음 날 아침에 식당에 내려온 알타이르를 마주했다. 미리 알타이르와 제 몫의 식사를 차려 놨었지만, 식당에 들어서서도 그는 멀찍이 서서 담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알타이르가 어제 하루 종일 잠들지 않았다는 보고를 들은 데다가, 그의 몸에 배인 관습에서 그녀는 잠시 그가 이곳에 있다가 떠나간다면 제법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를 억지로라도 이곳에 붙잡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원한다면 보내줄 것이었다. 정말 잠시,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을 조금 붙잡아주고 싶었던 것일까. 담은 앉아서 식사해도 좋다는 말을 해 두고, 알타이르의 건너편에 앉아서 말없이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밤부터 제법 배가 고팠을 텐데도 그는 천천히 식사했다. 차분하게 포크와 칼을 바꾸어가며 식사하는 모습이 제법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 입 한 입 음식을 비워가는 모습을 보며 담은 들리지 않게 웃었다. 제법 경계하는 것 같더니, 밥은 열심히 먹네. 담은 며칠이 될지 모르는 유예를 더 주기로 했다. 이쯤 되면 정말 아무렴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이 제가 몸담은 이곳에 위협이 된다고 해도. 담은 식사를 마치고서도 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알타이르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할 게 있는데.”

 

“아, 네.”

 

“고양이 좀 봐줄래?”

 

“네?”

 

차라리 사람을 죽이고 오라고 하는 게 더 실감이 날만큼 알타이르는 놀라 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그러나 담은 개의치 않고 방 문을 열었다. 방에는 검은 고양이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서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우아한 꼬리가 흔들렸다. 지금 이 곳의 주인으로 보이는 그녀와 무척이나 닮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데는 고양이만한 게 없거든. 괜찮지, 응?”

 

“아... 네.”

 

“뭐,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언제든 돌아가도 돼.”

 

담은 방 안으로 들어온 알타이르를 두고,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어쩌면 돌아왔을 때도 그가 그대로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담은 일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온 연락에 놀라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업무용이 아닌, 사적 용도의 연락을 위해 만들어 둔 핸드폰이지만 워낙 사적인 연락을 할 일도, 상대도 없는 탓에 항상 조용했기 때문에 연락이 온 것이 의외였다. 담은 핸드폰을 집어 들면서 직감했다. 그 남자구나. 하얀 남자. 오늘 아침 본부를 나서면서 혹시라도 자신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하라고, 그에게 여분의 연락용 핸드폰을 주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핸드폰의 연락을 확인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크하하학, 아 진짜. 주변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몰라 놀란 표정으로 자기를 쳐다보든말든, 담은 급기야 핸드폰을 붙잡은 채 책상에 엎드릴 듯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고양이 씻겨도 되나요?]

 

정말 독특한 연락이라고 생각했다.

 

[응]

 

간단히 답변을 주고 담은 조금 일정을 조정했다. 본부에 먼저 들어가 보려고, 음 아마 조금 있다가 바로? 곁의 사람들이 기겁을 하든 말든, 그녀는 현장을 박차고 나왔다. 흥미로웠다. 이 남자가.

 

 

 

 

 

본부에 도착해 방 문을 열자, 어느새 고양이를 다 씻겼는지 한창 그루밍에 열정적인 고양이가 햇볓이 드는 쪽에서 여전히 그루밍을 하고 있다가 담이 도착하자 우다다다 달려와 담의 다리 사이로 몸을 부볐다. 아무래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을 씻긴 데에 대한 분노가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에 가득한 검은 털과, 이리 저리 놓여 있는 고양이용 장난감을 봤을 때 제법 잘 놀아주고 있던 모양이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 제 고양이와 이 정도 친해진 것만 해도 놀라운 친화력이라고 생각했다. 담은 그릉거리는 자신의 고양이를 안아올렸다. 어쩐지 머쓱한 눈빛의 알타이르가 자신을 보고 허리를 굽혔다.

 

“뭐야, 됐어. 괜찮아.”

 

담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다시 허리를 세운다. 품에 안긴 고양이가 그릉거렸다.

 

“벌써 친해졌네, 응? 너 저 남자 너무 미워하지 마. 좋은 사람이잖아. 잠깐만, 간식 좀 가지고 올게.”

 

담은 고양이를 안은 채로 방을 잠시 비웠다. 알타이르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잖아, 하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는 한구석에 몰래 챙겨 두었던 무기들을 바라보다가, 결심을 굳히고 그것들을 모두 풀어두었다. 담에게 전할 말을 정리하느라 잠시 긴장감이 몸을 맴돌았다. 어제 이후로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이었다. 그 사이에 정말 긴장을 다 풀고 지냈구나, 싶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따라와서, 낯선 곳에서 긴장을 풀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옷에 묻은 고양이의 털을 털어내고, 옷매무새를 잠시 정돈했다. 나쁘지 않은 긴장감이었다. 숨통을 억죄는 긴장이 아닌, 약간 간지러운 듯한 긴장감이었다. 무슨 기분일까.

멍해있는 사이 담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담은 고양이가 좋아하는 츄르를 들고 와서 알타이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알타이르는 얼떨결에 간식을 받아들고, 작은 그릇에 츄르를 모두 짜 주고 고양이를 내려 주었다. 어느새 만족스러운 표정이 된 고양이는 얌전히 간식을 먹고 있었다. 알타이르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입을 떼었다.

 

“저, 여기 계속 머무르고 싶습니다.”

 

“어, 어?”

 

“일을 시켜주세요.”

 

“돌아갈 곳은?”

 

“…… 원래 없었습니다.”

 

“정말 여기서 나가도 돼. 아무 위해도 없을 거야. 정말 괜찮겠어?”

 

“네. 제가 찾고 싶은 걸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는 원래도 찾고 싶은 게 없었다는 말은 삼켰다. 그냥 이 곳에 머물고 싶은 이유를 가져다 대기에는 그런 이유가 적당해보였다. 담은 잠시 알타이르를 올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손을 내밀어 힘 있게 알타이르의 손을 붙잡았다.

 

“그래, 함께 가자 우리.”

 

그 곳이 어디든, 씩 웃어오는 미소가 시원시원했다. 알타이르는 긴장과 막연한 두려움이 한 순간에 탁 풀리는 기분을 받았다. 새로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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