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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알

담알의 300일 (현대 au)

              담알의 300일 (현대 au)

                                       w. 쿠엔

  기념일을 특별하게 꼬박꼬박 챙기는 편은 아니어도, 평소에도 매일같이 붙어 있을 수가 없는 이상, 기념일마저 함께 보내지 못하는 일이 생겨버리자 알타이르는 울상이었다. 물론 울상이라는 표현은, 알타이르의 표정에는 그 누구보다 정통했다 할 수 있을 법한 담 정도나 알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이 보는 알타이르는 여태 본 중 가장 우울하다 할만큼이나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괜찮다니까! 나도 그날 작업 있어. 그거 마감하면 돼. 그리고 다음 날 만나면 되잖아! 담은 아무렇지 않게 알타이르의 어깨를 툭툭 쳤지만, 여전히 우울한 기색이었다. 알타이르는 하릴 없이 붙잡은 담의 손만을 더 꽉 잡아 쥐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같이 있고 싶었는데.”

  알타이르의 경기 일정은 알타이르마저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국가 대표인만큼 큰 경기는 물론 작은 경기들도 많았고, 그 일정은 그의 선에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습 일정 정도야 조정이 가능하다고 해도, 경기는 꼼짝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   
  회사원이었다면 회사 반차를 내서라도, 학교를 다녔다면 학교를 빼서라도 만났을 텐데. 오래도록 직업을 가지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만이 생겨 오르려는 찰나 담의 손이 푹, 하고 알타이르의 눈을 덮어왔다.

“괜찮다니까~ 속상해하지 마. 내가 못가서 더 미안하지.”

  담은 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그동안 그려온 다양한 작품들을 동료들과 함께 모아 여는 큰 전시였다. 담의 전시회 일정 역시 코앞이었던지라, 담 역시 알타이르 못지않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래서 더욱 담은 알타이르의 일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알타이르는 담과 만날 수 없는 날이 생기는 것이 아쉬웠다. 알타이르는 제 눈 위를 덮은 담의 손을 끌어다가 손 끝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손 끝과 입술이 맞닿는 느낌과, 손가락을 타고 넘실거리는 숨에 담이 큭큭 웃으며 손을 빼내자 이번엔 자연스럽게 입술끼리가 맞닿았다.

“자기 싫다!”

어느덧 새벽을 넘어가는 시계를 보며 담은 쭉 기지개를 켰다. 알타이르가 품에 파고들듯 담을 끌어안았다.

“담 씨도 내일 바쁘잖아요.”

“그럼. 어서 자야지.”

  담은 알타이르가 경기 전날을 어렵게 빼고 집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내일 만나지 못하는 걸 슬퍼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이 이렇게 소중한데. 그렇지? 둘은 나란히 소파 아래 벗어둔 슬리퍼를 나누어 신고 걸음을 옮겼다. 곧 다시 해가 밝아올 시간이었다.


***

“지금 나가?”

“어, 나 지금 간다. 알지?”

담은 얇은 티켓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들고 휙휙 흔들었다. 친구들은 알법한 표정으로 그래, 그럼 그렇지. 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작업에 열중했다. 담은 애인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숨기는 편도 아니었다. 아침부터 신이 나 있다 했더니, 오늘 애인의 경기를 보러 간다고 신이 나 있었다. 그것도 몰래 보러 간다면서. 왜 몰래가? 점심을 먹으면서 친구가 묻자, 특별한 날이거든. 하고 담은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300일인데 애인과 만나지도 못하고 경기를 하러 가야한다고, 너무 속상하다고, 툭 치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어디까지나 담의 시점이다) 미안해하던 애인에게 오늘 전시 준비가 있어 자신도 바쁘다고, 경기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몰래 찾아갈 준비를 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아냐는 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신이 나 있었다.  
  알타이르는 늘 자신의 경기가 있으면 티켓 한 장씩을 챙겨 담에게 주곤 했다. 못 온다고 해도 한 장씩은 꼭 챙겨주었다. 못 와도 괜찮아요. 그냥 제가 드리고 싶어서 그런 거에요. 이번에도 그렇게 주었던 티켓을 챙겨 담은 경기장을 향해 출발했다. 미리 챙겨놓은 꽃다발이 향긋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오, 진짜 넓은 곳이네 이번엔.”

  알타이르가 항상 담의 전시에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듯, 담 역시 일정이 허락하는 한 항상 알타이르의 경기장을 찾곤 했다. 펜싱이 진행되는 경기장은 다른 체육 경기장만큼 큰 장소를 요구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경기의 규모가 큰 만큼 제법 장소도 넓었고, 사람들도 많이 들어차 있었다. 으챠- 담은 꽃다발을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항상 알타이르가 주는 티켓은 그가 서는 곳이 정확히 마주 보이는 자리였다. 이런건 미리 어떻게 알고 이 티켓을 가져다줄까? 생각하며 담은 자리를 정리하고 경기장을 천천히 둘러봤다. 오늘은 혹시나 알타이르가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을 먼저 찾을까봐, 경기 시간에 조금 빠듯하게 들어온 편이라 이미 경기장 정비와 연습이 끝난 듯 경기장이 정돈되어 있었다. 긴장되네. 담은 꽃다발을 무릎 위에 올려 두고 잠시 눈을 감았다.

‘내 전시에 오면 무슨 생각 해?’

‘담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그 말을 들은 후, 담도 같은 기도를 했다. ‘오늘 알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그녀는 조용히 덧붙였다.

  선수들이 입장하고, 담은 바로 알타이르가 입장하는 맞은편에서, 몇 번을 경기장에 와도 여전히 비슷한 정도의 긴장감을 느끼면서 꿀꺽 침을 삼켰다. 항상 알타이르는 경기 전에 담을 확인하고, 경기 중에는 거의 확인하지 못하고 경기 후에 다시 한 번 담을 확인했었다. 오늘은 아마 경기 전에는 날 못 찾았겠지? 생각하며 담은 조용히 경기에 집중했다.
  펜싱 마스크를 쓰고, 펜싱 전용 옷을 입은 알타이르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늘고도 긴 칼은 순식간에 상대의 몸을 찌르고, 베는 모양으로 날았다. 날카로운 칼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순간 순간에 점수가 나고, 뺏기기를 반복했다. 쉽지 않네. 담은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큰 경기다보니 상대도 쟁쟁했고, 점수는 아주 빠르게 뒤집어지고 다시 돌아오곤 했다. 잠시 시간이 날 적에도 알타이르는 마스크를 벗기는 했으나, 관객석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꾹 다물린 입매를 보며 담은 속으로 응원을 거듭했다. 행복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여러 번 선수들이 중앙선과 후방 경계선까지를 넘나드는 사이, 결과가 났다. 결과는 알타이르의 승리였다. 순식간에 홀 안으로 환호성이 가득 찼다. 담은 결과보다도, 경기가 끝났다는 것에 안도했다. 마침내 알타이르가 마스크를 한 손으로 벗어내고, 안에서 흐트러진 머리를 한 쪽으로 기울여 정리하며 고개를 든 순간, 담과 눈이 마주쳤다. 순식간에 동그랗게 커지는 눈동자를 보며 담은 웃었다. 양 손으로 엄지를 들어 보여주자, 놀란 알타이르의 눈이 곧바로 웃으며 휘어졌다. ‘우승 후 웃음을 짓는 알타이르 선수’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물밀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승 후에도 알타이르가 웃음을 보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담은 여전히 환호성과 웅성임으로 혼란한 자리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기자들을 지나서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싶었는데 순식간에 담 씨! 하는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복도 끝에는 마스크만 벗은 채로 빠르게 알타이르가 문을 박차고 나오고 있었다. 담은 아까보다도 더욱 활짝 웃어보였다. 알! 담이 제대로 부를 새도 없이 온통 하얀 옷에 하얀 머리까지 해 새하얗게 빛이 나는 듯한 알타이르가 담을 꽉 끌어안았다. 막 풀어 내린 알타이르의 머리카락이 담 쪽으로 흩어져 내렸다. 담은 알타이르의 어깨를 마주 안았다.

“어떻게 왔어요? 말을 해주지, 아까는 못봤는데...!”

“일부러 몰래 왔지. 오늘 전시 준비 끝나는 대로 왔어, 너무 보고 싶어서.”

  장난스러운 담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알타이르는 잠시 담이 대답하는 동안 몸을 떨어뜨렸다가, 다시 담을 끌어안았다. 상체를 숙여서 안았지만, 얼마나 꽉 끌어안았는지 담의 몸이 살짝 들릴 정도였다.

“와줘서 고마워요. 생각도 못했는데, 너무... 행복해요.”

  정말 행복해요. 알타이르도 아까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담은 보슬보슬한 알타이르의 머리카락을 쓸어 정리해주면서 팔을 이끌었다. 너 옷이라도 얼른 갈아입고 나와. 다시 복도를 나란히 거슬러 걸어가면서도 알타이르는 담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담이 건네 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옷 갈아입고 나와서 저녁 먹으러 가요.”

“다음 일정은 없어?”

“없어요.”

“진짜?”

  슥, 시선을 피해버리는 알타이르를 보고 담은 크핫, 웃음을 터뜨렸다. 뒤에 일정은 어떻게든 빼보겠다는 말을 대신 하고 있었다. 그래 뭐, 너만 괜찮다면 나는 좋지. 담은 마주 잡은 손을 앞 뒤로 흔들었다.

“담 씨.”

“응?”

“고마워요.”

“뭘 새삼스럽게 또,”

  사랑해요. 순식간에, 문 앞에서 몸을 돌려세운 알타이르가 담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당겼다. 비어있는 대기실 안, 둘이 등진 문이 닫히자 고요함이 맴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가까워진 두 입술이 마주 닿았다. 고맙다는 말이, 행복하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 고요를 떠돌았다. 마주잡은 손을 풀지 않은 채로 알타이르는 꽃다발을 든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담의 머리를 받쳐 안았다. 숨이 섞이는 사이로 꽃의 향기가 문득 새어들었다. 달착지근하고도 싱그러운 사랑의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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