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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알

[담알] Fall In. 01

[담알] Fall In 01

w. 쿠엔

날이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바깥은 찬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바람에 휘청일 정도로. 여러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 한복판의 풍경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시각각 조금씩 달라졌다. 오전 시간은 무척 한가했으나, 점심시간 즈음이 되면 꽤 북적였고, 그 시간이 끝나갈 즘에는 다시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들어가는 식이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시간이라 많은 이들이 회사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으나, 이제 막 건물에서 나온 담은 정 반대로 향하고 있었다. 회사들이 밀집한 곳을 벗어나면 곧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한 골목이었다.
그녀는 애초에 정해진 업무 시간이 있다기보다는, 일을 진행하다가 시간이 나는 대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이 시작되면 복귀하는 터라 움직임이 융통적이었다. 담은 이제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골목을 들어서며 기지개를 폈다. 오랜만에 밖을 나왔더니 뻐근하네. 평소에는 필드에서 활동하다가, 요즘 부쩍 실내에서 일을 하다 보니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아 그녀는 부러 걸음걸이를 조금 더 큼직하게 내딛었다. 본래도 당당하고 우아하던 걸음걸이가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갔다. 또각이는 구두 소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방향과는 반대로 향하는 채였다.
담은 짙은 색의 무늬가 나무로 제법 고풍스럽게 장식된 커다란 문을 잡아당겼다. 무거워보이는 문이 제법 쉽게 열리고, 어서 오세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카운터 쪽에서 쏙 고개를 내민 운의 모습이 보였다. 운은 오랜만에 카페를 찾은 담을 보고 대번에 반색을 하며 웃고 있었다. 워낙 규모가 큰 카페인지라, 카운터에서부터 담이 막 들어선 입구까지는 꽤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은 언니! 하고 웃는 운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담은 여전히 차분하고도 시원한 걸음걸이로 카운터에 다달아 운에게 인사했다.

“잘 지냈어, 응? 오늘 부쩍 더 행복해 보이는걸.”

“다 언니가 와줘서 그렇지! 어쩐 일이야, 요즘 통 안보이더니.”

보고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고! 담과는 제법 나이 차이가 나는 운은 담의 눈에 한 없이 어려보이기만 했다. 서운하다는 듯 풀 죽은 표정을 해 보이는 것도 귀여워, 담은 웃으며 운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럴 일이 있었어. 요즘 일이 두 배가 돼서 말이야.”

“두 배?”

큰일 나는 거 아냐? 언니 말고, 우리 사회가? 속닥거리는 목소리로 말소리를 죽여 장난기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운의 어깨를 이번에는 제법 세게 쳐서 역시나 장난스럽게 밀어낸 담은, 이내 손을 휘휘 저었다.

“됐어. 얼른 주문이나 받아.”

“네~!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맛있게, 테이크 아웃인가요?”

“아, 맛있게까지는 맞는데 오늘은 마시고 갈래.”

“헉, 언니가 우리 가게에 앉아주는 건 또 처음이네. 아주 영광이야.”

운은 웃으며 알겠다고 말하며 곧 커피를 내리러 안쪽으로 사라졌다. 담은 그제야 진동벨과 카드를 챙기고 뒤를 돌아 자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운의 카페를 알고 난 이후 이 곳의 커피 맛에 반하기도 했고, 운과도 꽤나 친해져서 카페에 자주 들르기는 했지만, 항상 커피는 테이크아웃 해가기만 했었다. 워낙 업무 시간에 여유가 없고, 가뜩이나 이런 곳에 오랫동안 앉아 커피의 맛을 즐기기에는 더욱 적합하지 못한 직업인지라 그녀는 늘 살기 위해 카페인 수혈을 받듯 커피를 받아 바로 떠나곤 했었던 것이다. 때때로 이런 여유도 나쁘지 않지. 담은 잠시 둘러보다가 제법 여유가 있는 좌석인, 소파가 길게 놓여 있는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막 햇볕이 따뜻해지기 시작해지는 오후에 맞춰 가사가 없는 부드러운 멜로디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제 할 일에 몰두하기 좋은 자리였다.

“읏차.”

담은 긴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쳐두고, 소파 위로 몸을 던지듯이 앉았다. 푹신푹신한 소파가 만족스럽게 몸을 감싸오는 기분이었다. 실내의 온도는 바깥이랑 다르게 제법 따뜻했고, 무엇보다도 커피의 고소한 향과 베이커리가 풍기는 향도 무척 좋았다. 케이크, 스콘, 마카롱과 같은 디저트들이 가운데에 바 형식으로 마련되어 있어 달짝지근한 향이 실내에 가득히 풍겨 무척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담은 한 손에 들고 온 작은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아까 완료 보고를 받은 일을 다시금 눈으로 훑어 내렸다. 현장에서 마주친 팀의 인원이 예상보다 무척 적어 다행히 일이 빠르고 쉽게 끝났다는 보고였다. 덕분에, 여차하면 바로 현장으로 투입될 예정이었던 담에게도 여유 시간이 생긴 것이었다.
태블릿의 화면으로는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항상 직접 뛰기만 하던 현장을 이렇게 보니 새삼스럽게 낯선 기분이 들어 담은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담은 화면 옆으로 정신없이 뜨기 시작하는 처리 일지와 보고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결국 이 시간도 아무것도 안하고 쉬지는 못하겠구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두 배로 불어난 것이 실감이 났다. 어쩌다가 이 일을 맡아가지고는... 담은 투덜거리면서도 몇 가지 보고를 빠르게 확인하고 처리했다.
현장에서 활동하던 메인 요원이던 담은 갑작스럽게 컨트롤 타워에서 빈자리가 나버리는 탓에, 급작스럽게 지시 및 감독 역까지 얼떨결에 떠맡아버린 참이었다. 그런 직책은 귀찮아서 딱 질색이라는 담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곳의 인력 중 가장 유능한 담이 전략 전달과 지시 역할을 맡아줄 수밖에 없다는 상부의 애원 아닌 애원에 어쩔 수 없이 맡은 일이 제 업무처럼 완전히 굳어져 가고 있었다. 사령관의 자리에 해당하는 사람을 신입 중에서 뽑아 앉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오래 활동해서 현장을 직접 뛰는 눈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지닌 것도 담이 거의 유일한 것이 사실이었다. 담이 지끈거리는 것 같은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 누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쯤, 운이 직접 커피를 가지고 담의 자리를 찾아왔다.

“짠! 우리 카페 표 가장 맛있는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운이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자주 와야겠는걸, 응?”

“완전 환영이지! 우리 단골들이야 많지만 언니만한 사람이 또 있겠어.”

그럼 언니, 난 카운터가 비어서 얼른 가볼게. 넓은 카페여서 사람들이 북적인다 느껴지지 않을 뿐 여전히 사람이 많은 터라, 운은 얼른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담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살뜰하게 카페를 운영해가는 운을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운이 카운터 안으로 사라지자 곧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다.
카페의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할 일들을 가지고 바빠 보였다. 누군가는 책을 펼치고 열심히 무언가를 옮겨 적고 있었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가지고 정신없이 작업을 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함께 온 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천천히 카페를 둘러보던 담은 햇빛이 정통으로 들어오는 큰 유리창 아래 앉은 남자에게 곧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게끔 만들어진 좌석이었던 반면 담은 옆 벽면에 기대진 소파에 앉아 있던 터라, 둘의 시선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제법 가까운 거리였기에 담의 정면 시선이 남자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다른 빛깔 하나 섞이지 않은 새하안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 너무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통 유리창으로 통과한 햇빛은 새하얀 머리카락을 그 특유의 노란 빛으로 물들이다가 나무들이 흔들릴 때면 그 그림자로 인해 살짝 씩 비껴나가며 춤추듯 움직였다. 그리고 남자는, 혼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는 차가 담긴 듯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컵 하나에, 이미 비워진 접시 하나와 아직 손을 데지 않은 새 케이크가 담긴 접시도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 단 음식을 즐기지 않을뿐더러 입이 짧아 케이크 하나를 시켜도 절반을 남기는 담의 입장에서 홀로 케이크 두 접시를 시켜 먹는 것은 신기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옆에 자켓을 걸쳐둔 것 외에는 소지품이 거의 없이 작은 다이어리와 펜만을 꺼내놓은 채로 햇빛 아래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치 햇빛 아래 따뜻함을 품는 고양이들처럼. 남자는 무척이나 고요하고 움직임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시 다이어리를 뒤적이다가, 펜은 들지 않고 이번에는 한참 턱을 괴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담이 한참 남자를 바라보다가, 태블릿으로 업무를 조금씩 처리하기를 반복하고 있을 즈음 남자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초코 브라우니 위에 생크림이 얹어진, 즉 담은 입도 못 댈 거라고 생각한 만큼 달아 보이는 케이크를 한 입씩 먹기 시작했다. 은색 포크로 케이크를 작게 잘라 입에 넣고 남자는 천천히 우물거리며 케이크를 모두 해치웠다. 이어 담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비워낼 즘 남자는 비워진 그릇 두 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담의 시선과 잠시 마주친 눈동자는 머리색과 똑같은 흰 색이었다. 직업상 온통 새카만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일밖에 없는데다가, 저 역시도 검은 옷차림에 검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 보니 흰 머리에 흰 눈동자를 한 사내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담은 남자가 자리를 뜨는가보다, 하고 어느새 낯선 남자에게 팔려 있던 신경을 다시 붙잡아 와서, 얼음을 하나 두 개 깨어 먹으며 천천히 경과 보고를 확인하던 참에 담의 곁 시야로 남자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연한 베이지색 셔츠에 슬림하게 빠진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던 담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 속으로 후, 하고 안도했다. 하마터면 크게 웃을 뻔했다. 자리에 돌아온 남자는 빈 손이 아니라 이번에는 마카롱 두 개를 담은 접시를 들고 있었다. 찻잔을 들고 몇 입 마신 남자는 다시 마카롱 하나를 손에 들고 먹기 시작했다. 한 입에 반을 먹고, 다른 한 입에 남은 부분을 모두 넣어 깔끔하게 먹는 모습을 보며 담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아까 잠깐 마주했던 얼굴은 하얀 머리카락에 더불어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어서, 케이크는 커녕 아메리카노도 아닌 에스프레소만 마실 것 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 모습이 의외였다. 재미있네. 담은 정말이지 우연하게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한 남자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볼 생각이 없었으나 어느새 흥미라도 찾은 듯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과는 별개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버려 담은 자리를 정리하고 어느새 얼음도 거의 없어진 잔을 들고 다시 카운터에 돌려주었다.

“언니, 또 와!”

“시간 되는대로 올게.”

힘차게 손을 들어 배웅해주는 운을 뒤로 하고, 담은 카페를 나섰다. 어쩌면 앞으로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가는 날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담이 떠난 자리에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한 사내의 눈길이 담이 남자에게 준 시선만큼이나 오래 그 자리를 향해서 머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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