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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쿤

[밤쿤] 맞물림

- 신의탑 60분 전력, '차이'

[밤쿤] 맞물림

w. 쿠엔

때는 팀원들이 가장 들떠있는 때였다. 밤과 쿤을 포함한 팀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의 압도적인 승전보를 거두고 있었다. 그 승리의 원인이 늘, 항상, 100퍼센트 밤의 손끝에서 나온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팀원들이 참여하지 않거나 게을리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밤이, 다른 선별인원들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것의 결과였다. 그러나 밤은 그를 결코 티내는 법이 없었다. 제가 총력을 다해 팀을 이끌어 승리로 가져다놓고서도 항상 팀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그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계속해서 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내가 네 날개를 붙들고 있는 것이면 어떡하지. 쿤은 결국 불편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시끌벅적한 숙소가 고요에 빠지고 나서 쿤은 조용히 포켓으로 밤을 불러냈다. 평소 포켓을 확인하는 간격이 긴 밤이라, 조금 기다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밤은 거의 곧장 포켓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바로 쿤의 방으로 들어왔다. 꼭 그를 닮은 정갈한 노크소리에, 한숨처럼 떨어지는 쿤의 승낙에, 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포켓, 빨리 봤네?”

“연락이 올 것만 같았어요.”

왜? 쿤은 당연스럽게 샴페인이 담긴 잔 하나를 밤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침대 헤드에 기대고 누워 너무나 편안하게 말하는 쿤의 모습을 보고 밤은 잠시 망설이다가 쿤이 덮은 이불 겉으로 쭈뼛쭈뼛 다가서 앉았다. 그리고 쿤이 건네는 잔을 받아들었다.

“.... 오늘, 표정이 안 좋아 보이셨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면서 밤은 때때로 예리했다. 사실 예리하다는 건 저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이고, 천성이 상냥하다는 말이 밤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쿤은 생각했다. 남을 잘 돌보고 챙기는 성격이었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다. 변한 건 너무나 성장해버린 그를 온전하게 따라가지 못하는, 그리고 그런 자신을 스스로 떨어뜨리려고 하는 못난 자신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여태까지 늘 그랬지. 쿤은 잔을 들고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밤은 조심스럽게 쿤이 든 잔의 밑에 손바닥을 댔다. 천천히 내려오던 잔이 툭, 손바닥 위에 부딪혔다.

“아까와 같은 표정이네요, 또. 그러다가 술 쏟겠어요.”

잔에서는 달짝지근한 향이 올라왔다. 평소에는 드라이한 술을 즐기다가 잠자리에 들기 바로 전에는 달달한 술을 가끔 하는 그의 성격과 같았다. 밤은 그늘이 한 겹 드리워진 쿤의 표정을 잘 알았다. 그는 늘 별 거 아닌 것에 예민하고 섬세하게 마음을 쓰고, 아닌 척 하느라 제 마음을 다치고, 또 모른 척 한 겹 무표정을 덮어 쓰는 사람이었다. 언젠가에 그는 제게 온전한 상처를 보여줄 수 있는지. 밤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었다. 이런 기다림은 지루한 것이 아니었다.

“밤, 이제 탑은 너 혼자 올라가.”

나는 따로 동료들이랑 따라갈게. 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쿤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된다는 눈빛인 것을 알았지만, 쿤은 애써 시선을 잔으로 돌렸다. 너도 알잖아, 우리는, 아니지 나는- 천천히 입을 떼던 쿤의 입술 위로 밤의 손이 확 덮여왔다. 이번에 놀란 것은 쿤이었다.

“아니에요.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는데, 그건 아니에요. 지키고 싶다고 했잖아요, 제가. 제가 원하니까. 제가 좋아하니까...”

제 의지란 말이에요. 밤은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쿤은 진한 금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세상을 잃은 눈빛을 하고 있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그 눈빛을 사랑했다. 자신의 곁에 여태까지 있어주던 그 단단한 눈동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날개를 붙들면서까지 곁에 두기엔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에 다시금 마리아를 보냈을 때처럼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예전 상처를 떠올리면서 본능적으로 욱씬 울려오는 심장을 두고 쿤은 밤의 손을 떼어내려고 손을 올렸다. 잠시 버티던 밤의 손은 툭 떨어져 나갔다. 버틸 수 있어도 버티지 않을 때도 있는 그였다.

“버티지 마. 그냥 가줘.”

이제 가 봐. 쿤은 망설임 없이 손에 든 잔을 털어 한 번에 술을 입에 넣었다. 대화를 끝내겠다는 의미였다. 밤은 그 의미를 다 알고 있음에도 미동이 없었다. 아니, 알았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이 와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선 쿤의 앞으로 밤도 침대에서 따라 내려왔다. 다시금 두 얼굴이 마주했다.

“쿤 씨. 저는... 쿤 씨를 위해서 여기 머물러주고 있는... 그런 게 아니에요.”

“아닌게 아니라,”

“쿤 씨가 목적이라 쿤 씨 곁에 있는 거란 말이에요!”

“탑을 올라가야지? 탑을 바꿀 거라며? 부모님의 원수는? 그런 건!”

“같이 하는 거 에요.”

“나는 그런 꿈 없어.”

“있잖아요. 왜 없어. 정상에 올라갈 거잖아요!”

“너랑은 못가.”

“라헬처럼, 저를 두고 떠날 건가요?”

“널 보내는 거야. 나를 두고 떠나.”

“저는 안가요.”

제자리를 맴도는 언쟁에 쿤이 이마를 짚었다.

“그만하자. 너랑 나는 너무 달라. 차이가 커. 같이 갈 수 없을거야.”

“완벽하게 같아선, 함께 할 수 없어요. 차이가 있어야 맞물릴 수 있는 거에요. 똑같이 생긴 퍼즐은 맞춰지지 않아요. 서로 차이가 난 곳이 맞물리는 게, 그게 바로 함께 간다는 거잖아요!”

형형한 눈빛으로 이렇게나 큰 소리를 내는 그는 낯설었다. 쿤은 결국 밤의 눈을 마주했다. 상냥하기만 하던 눈은 눈물과 감정으로 일렁였다.

“밤,”

“손을 내밀어야 손을 잡죠. 쿤 씨는 한 번 손 내밀어서 잡아줄 사람이 아닌 거 알아요. 하지만 제가 손을 내밀 순 있게 해주세요. 그래야 언제든지 필요할 때 잡죠. 당신에게 제가 필요할 때가,”

“너에게 내가 필요할 때가 없!”

“항상, 그래요. 항상 필요하니까 손을 내밀고 있는 거잖아요.”

함께 해 달라는 거, 쿤 씨 욕심이 아니고 제 욕심인 거에요. 밤의 눈꼬리 끝으로 눈물이 타고 흘렀다. 결국 쿤의 얼굴로도 열이 몰리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왈칵 눈물을 터뜨리는 쿤의 얼굴은 낯설면서도 낯익었다. 외로움에 울던 자신의 모습이, 그러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본면이, 그렇게 드러났다. 밤은 말없이 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쿤은 그대로 품 안에서 울었다.

“... 가지마.”

“그럴게요.”

“... 가지 마.”

“곁에 있을게요.”

“미안해.”

“제가 더 미안해요.”

그러니까 없던 말로 해요. 그러니까가 뭐야. 쿤 씨가 울었잖아요. 그게 뭔데... 품에서 웅얼거리는 말소리를 들으면서 밤은 가만히 서 있었다. 다시는 떠나지 않을 곳에서는 늘 그렇듯이 익숙한 그의 향기가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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