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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쿤

[밤쿤] 초대

-신의탑 60분 전력, '초대'

[밤쿤] 초대

w. 쿠엔

때는 밤, 쿤, 라크네 일행이 모두 랭커가 된 후였다. 선별인원들의 꿈과도 가까운 랭커이지만, 랭커들은 랭커 내에서도 상위권 랭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막 랭커가 되어 반짝이는 눈을 빛내는 신입 랭커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들은 아직 먼 이야기였다. 랭커가 됐다는 것은 꿈만 꾸던 소망의 성취였다. 수 없이 치러진 경쟁과 압박의 해방과도 같은 시간들에 일행들은 여유를 누리며 맛있는 것들을 먹고, 즐거운 것들을 누리러 다녔다.
밤이나 쿤도 마찬가지였다. 연인 사이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지만 실질적으로 둘이서 누린 연인들끼리의 달짝지근한 시간들이 적었던 터라, 둘은 밤이 좋아하는 꽃놀이며 쿤이 좋아하는 바닷길 드라이브까지 즐겨가며 시간을 보냈다. 한 달이 일주일 같았고, 일주일이 하루 같았다. 행복한 시간들은 이전과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금방 흘러갔다. 문제는 이러한 행복하기만 하던 시간 중에 삐걱이며 발생했다.


“쿤 씨, 다 씻으셨어요?”

“응, 들어와.”

반대편 룸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그치자 밤이 거실에서 물 한잔을 들고 쿤의 방문을 열었다. 쿤은 막 씻고 나와 젖어 있는 머리를 툭툭 털어 말리느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한 손은 책상 위의 무언가들을 뒤적이느라고 바빴다. 여러 종이들을 보느라 제대로 말리지 못하는 머리에서 뚝뚝 물이 흘러내리자 밤이 금세 다가서 쿤의 손에서 수건을 가져가서 대신 머리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평소 쿤의 젖은 머리를 자주 말려주는 밤의 손길은 능숙하다 싶을 만큼 가볍게 움직이고 문지르며 쿤의 머리를 말렸다. 보통 머리를 말려줄 때면 눈을 감고 얌전히 있던 쿤이 오늘만큼은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 공부할 게 남아 있는 거에요?”

“아, 공부할 건 아니고.”

귀찮은 일들이 좀 있어서... 쿤이 귀찮아하는 것은 하얀 봉투에 푸른 씰링이 찍힌 봉투들이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봉투였는데 모두 흰 색 사각인 봉투의 네 모서리에는 푸른 색 삼각형이 박혀 있었고, 봉투를 봉하는 씰링은 푸른색이었다. 봉투 하나를 들어 푸른 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밤이 놀란 눈빛으로 쿤을 바라봤다.

“쿤 씨 가문의 모양이네요?”

“응. 다 가문에서 온 편지들이야. 하나같이 쓸데없는 것들이라 치워 두려고.”

가문에서는 랭커가 된 쿤에게 하나같이 축하의 인사를 보내오고 있었다. 나름 친분이 있는 이들은 물론, 거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하이랭커의 사람들도 형제라는 이름을 하고서는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쿤은 여전히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제 머리카락을 부들부들 쓸어 만지는 밤의 손길을 느끼면서 편지를 한 쪽으로 몰아놓다가 눈에 띄는 하나의 편지를 발견했다. 흰 색이기는 했지만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문양들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씰링에는 여전히 쿤가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설마... 망설이던 쿤이 여태까지는 바닥에 두고 이리저리 치우기만 하던 편지들과 다르게 눈에 띄는 하나를 결국 집어 들었다. 열심히 움직이던 쿤의 움직임이 멎자 밤이 쿤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편지에요?”

“음, 다르다기보다는 무시하기 곤란하달까..?”

이거 아무래도... 쿤이 봉투를 뜯자 이번에는 은빛으로 장식이 가미된 편지지가 드러났다.


            ‘랭커가 된 아들에게.
             가문에 들러보는 건 어떠니.’


세상에. 쿤은 낮게 탄식했다. 말도 안 돼. 쿤은 가만히 앉아서 편지만 들여다보았다.

“와, 쿤 씨 아버지께서 직접 보내신 거에요?”

쿤은 아버지면 뭐해, 별로 반갑지 않은 인간인걸. 하고 무심하게 대꾸하려다가 갑작스럽게 제 허리를 안아오는 손길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온기보다도 먼저 심장을 잡아 끄는 것은 귓가에 낮게 내리 앉던, 밤의 드물게도 잦아든 목소리였다.

“저도, 이런 편지를... 받아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쿤은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가 제 앞으로 둘러진 밤의 손을 천천히 붙잡았다.

“함께 갈래?”

“네?”

“응해보자구, 초대에.”

본래 응할 생각은 없었지만, 같이 간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쿤은 본가에 들어서자마자 제 생각을 후회했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승냥이같은 호기심에 찬 날카로운 시선들. 안녕하세요? 쿤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한 마디 해보려는 형제들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밤에게 말할 때마다 다가 온 것은 여전히 따듯한 밤의 손길이었다. 밤은 여전히 불편한 표정인 쿤의 손을 붙잡으며 말을 붙였다.

“쿤 씨.”

아, 밤은 쿤을 부르자마자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호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게로?”

여태까지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확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는 쿤의 시선에 밤이 웃었다.

“괜찮아요. 저희는 초대 받은 것뿐이잖아요?”

“밤,”

“함께 가요. 이곳은 이전에 아게로가 알던 곳이랑은 다를 거에요. 제가 함께 갈게요.”

아게로- 귓가에 흐르는 환청 같은 여인의 목소리. 그리고 그 위로 겹쳐 들리는 아게로- 저를 부르는 현실의 목소리. 같은 이름을, 같은 장소에서 퍽이나 달라진 모습으로 듣는 것은 낯설었다. 집의 안쪽부터 흘러들던 목소리가 밤의 목소리 한 번에 잠잠해졌다.  그래, 어쩌면. 쿤은 형제들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곁에 있는 애인의 웃음이 드리워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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