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밤쿤

[밤쿤] 특별한 주인

-신의탑 60분 전력 '광고'

[밤쿤] 특별한 주인

w. 쿠엔

간단한 과자 몇 봉과 컵라면을 가지고 계산대로 다가선 밤은 띡-띡 익숙하게 찍히는 바코드 소리를 멍하게 듣다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어제 쓴 돈 때문에 아마 카드로 저게 다 계산이 안 될텐데.. 바코드를 다 찍은 직원이 밤을 빤히 쳐다보자 하하, 웃으며 일단 긁어주세요. 하고 카드를 내밀자 역시나 잔액 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갑과 가방을 모두 뒤져 나온 지폐를 꺼내 가까스로 계산을 마친 밤이 봉투를 품에 끌어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자취를 시작하고 나니 돈이 부족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애초에 친구들과 이리저리 어울리며 놀러 다니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먹는 데 사치를 부리는 타입도 아니었지만 하루 단기 알바로 버는 돈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밤은 좁은 자취방에 들어가 방금 사온 라면을 식사로 끓이면서 핸드폰으로 급하게 구인 광고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집사 일을 할 사람을 구합니다. 나이는 성인 이상. 성별, 직업 등 상관없음. 서류 없이 면접 후 합격 여부 결정...’

간단하게 올라온 구인 광고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딱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상당히 높은 시급과 더불어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머물 수 있는 집과 식사를 매 끼 제공합니다. 근무 시간은 직업에 따라 상의 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거다! 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집과 식사를 모두 제공하고, 거기에다가 일하는 돈까지 따로 받는다면 자취방에 대한 걱정 없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밤은 방금 끓는 물을 부어 조금은 덜 라면을 빠르게 먹고 나서 바로 씻기 시작했다. 구인 광고에는 적혀진 주소로 찾아오면 언제든지 면접을 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얼른 가봐야지. 급하게 머리를 털어 말리고 옷을 고르는 밤의 손짓이 한 없이 즐거웠다.

적혀진 주소로 안내하는 핸드폰의 음성에 맞춰 걷던 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에 그제야 핸드폰 액정에 고정하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우선적으로 학교와 멀지 않아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마 무시한 저택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다.
푸른 지붕과 대문을 제외하고 흰 색으로 칠해진 집은 차마 한 채의 집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한적한 골목 끝에 홀로 자리 잡은 저택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문 안으로 보이는 정원에는 푸릇푸릇한 잔디가 한창이었고, 쏴아아아 하는 맑은 소리를 내뿜는 높고 고급스러운 분수도 있었다. 이런 집이라면 제 자취방과는 비교도 안 되는 환경에서 머물게 되겠구나. 밤은 멍하니 집 안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르고 현관문 옆의 벨을 눌렀다. 딩동- 물방울 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초인종 소리 끝에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아, 저 구인 광고 보고 왔습니다!”

한참 대답이 없는 상대에 밤이 잘못 찾아왔나, 싶은 순간 문의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리며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서 본 정원은 더 화려한 면모를 자랑했다. 온갖 꽃향기가 진동을 하는 정원에는 알록달록한 장미가 가득했고, 정원을 가로지르는 깔끔한 돌길이 이어져 있었다. 밤은 돌길을 따라 걸으며 두리번두리번 저택과 정원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저택의 대문만큼이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벌컥 안에서 문이 열렸다.

“이거 구인 광고를 올리고 정말 오랜만에 온 사람인걸!”

푸른 머리를 가진, 그리고 옅은 보라색의 셔츠를 입은 남자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밤을 맞이했다. 해맑은 목소리의 남자가 밤을 안쪽으로 들였다. 바깥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높은 천장의 집은 깔끔한 모노톤이었다. 벽을 거의 가득 채우는 크기의 화면에는 알록달록한 레고가 날아다녔다. pause라는 화면이 깜빡이는 게임 화면을 지나쳐 남자는 밤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긴 테이블의 끝에 앉은 남자가 밤을 빤히 바라봤다.

“좋아, 일단 합격선인데.”

“네?”

“성인이지?”

“아, 네.”

“좋아, 그럼 두 번째 관문.”

네? 밤은 얼떨떨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봤다. 대체 제가 뭘 했길래 합격이죠...?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일단 채용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밤은 꾹 입을 다물었다.

“아차, 잊을 뻔했네. 내 이름은 하츨링이야. 당신은 이름이 어떻게 되지?”

“스물다섯번째 밤입니다.”

“그래, 밤. 마지막 시험이 하나 남아있어. 이것만 통과하면 바로 합격이야.”

“그, 첫 번째 시험은 뭐였나요..?”

“얼굴.”

“네?”

“음, 그러니까 곧 보게 될 테지만, 네가 집사로써 모실 분이 얼굴을 좀 까다롭게 보셔서 말이야.”

하츨링이 밤에게 간단한 설명을 하고 나서 손에 든 게임기를 뿅뿅 만지자 곧 스피커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자고 있었어?”

“아니. A.A는 자고 있어.”

“이런, 자고 있는 걸 깨우고 싶진 않은데... 잠시 내려와야 할 것 같아.”

“A.A가?”

“그래. 여기, 꽤 괜찮은 청년이 새로운 집사로 왔거든.”

“귀찮게... 알겠어. 데리고 내려갈게.”

곧 올 거니까 잠깐 기다려. 편하게 의자에 기대면서 하츨링이 웃어보였다. A.A 라는 사람이 주인인가? 밤은 긴장한 상태로 손을 몇 번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사이, 타박타박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린 끝에 하츨링과 같은 푸른 머리를 한, 그러나 키가 더 작은 소년이 나타났다.

“저분이 A.A 이신가요?”

밤이 질문하자 하츨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쟤는 란이야. 내 동생이지. A.A는 란의 품 안에.”

품 안에? 하츨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란의 품에 있는 담요가 움직였다. 그리고 곧 담요의 벌어진 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것은 새하얀 털에 푸른 눈을 가진 고양이였다.

“마지막 시험은 A.A의 승인을 받는 거지.”

“네..?”

고양이가 주인? 아니 고양이에게 승인을 받으라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멍하니 서 있는 밤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온 란이 담요를 걷어내고 고양이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냈다. 담요에 묻혀 있던 몸이 다 드러나도 한 품에 넉넉히 안길 작은 몸이었다. 냐옹. 작은 소리로 우는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하츨링이 들어냈지만, 곧 고양이가 날카롭게 발톱을 세웠다. 꺙! 온 몸으로 싫은 티를 내는 고양이에 하츨링이 윽, 하고 곤란한 얼굴을 했다.

“보다시피 A.A가 사람을 안 좋아해서. 아직 어려서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도움이 필요한데 이렇게 사나워. 가족들의 도움도 거부하니 곤란해서 집사를 들이려고 하는 거야.”

밤은 여전히 하츨링의 품안에서 발톱을 세워가며 그릉거리는 고양이를 빤히 바라봤다. 고양이와 밤의 눈이 마주치자 고양이의 두 귀가 쫑긋거렸다. 머리부터 꼬리까지가 제 팔의 반도 되지 않는 작은 고양이는 새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잘 관리된 듯 윤기가 흐르는 새하얀 털에 보석 같은 눈동자가 누가 봐도 빼어난 미묘였다. 밤은 조심스럽게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고양이는 잠시 가만히 밤을 바라보다가 귀를 쫑긋이고는 얌전히 밤의 손으로 안겨들었다. 헉, 하츨링이 거의 감동에 찬 소리를 냈다.

“좋아! 합격이야! 세상에 몇 년만에!”

아직 어린 고양이니까 잘 돌봐줘야 해. 일단 페이는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채용된 걸로 하자. 알았지? 품안에서 움틀거리는 따끈따끈한 온기에 정신이 팔린 밤에게 채근하듯 이야기 한 하츨링이 밤을 잡아끌었다.

“위층에서 맨 왼쪽 방이 A.A의 방이야.”

A.A를 잘 부탁해. 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내려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품에 안겨 갸릉 거리던 고양이가 반짝 고개를 들었다. 호기심과 낯설음으로 마주하는 금빛 눈동자에 대답하듯 푸른 눈동자가 한 번 깜빡이고는 냐옹- 울었다.

잘 부탁해 집사.

'밤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쿤] 새로운 시작  (0) 2018.04.29
[밤쿤] 초대  (0) 2018.04.15
[밤쿤] 물빛 무도회  (0) 2018.02.24
[밤쿤] An aside (방백)  (0) 2018.02.17
[올레쿤] 명암(明暗) 의 적(的)  (0) 2018.02.10

[밤쿤] 특별한 주인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