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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쿤

[올레쿤] 명암(明暗) 의 적(的)

[올레쿤] 명암(明暗) 의 적(的)

w. 쿠엔

쿤은 뻐근하게 아파오는 어깨를 주무르며 보고 있던 서류 파일을 정리했다. 시계는 쿤이 바라보기를 기다렸다는 마냥 분침이 막 12를 가리키며 6시 정각이 되어가는 참이었다. 뻐근한 몸에 며칠 제대로 된 식사 대신 카페인을 밀어넣었던 속이 욱신거리는 기분을 느끼면서 쿤은 카드를 꺼내 들고 외투를 걸쳐 입었다. 조금 든든한 식사를 챙겨먹을 필요성을 느끼면서 한 손에 든 카드를 매만지던 쿤의 어깨를 자왕난이 건드려왔다.

“술 어때? 술! 술 마신지 어언 몇 달이 되어가는 것 같군, 친구여!”

두 팔 벌려 쿤을 안을 기세인 노란 머리를 밀어내면서 쿤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술이야. 나는 들어가 쉴게.”

“매정하기는. 야, 이수야! 술!”

쿤의 반응에 서운해 하더니만 곧장 돌아서서 이수를 찾는 폼이 전혀 서운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쿤은 고개를 저으며 서 문을 열어 밖으로 몸을 빼냈다.

“그럼 먼저 간다.”

“푹 쉬어!”

이수는 자왕난에게 어깨를 잡혀 짤짤 흔들리는 채로도 쿤에게 가벼운 손 인사를 건네주었다. 한 번 이수를 보고 피식 새는 웃음을 터뜨린 쿤은 걸음을 재촉했다. 쿤이 집에 음식을 사들고 들어가기 위해 싶은 마음에 음식점이 많은 거리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골목길을 들어서던 찰나였다.
이런 저런 가게를 검색하느라 핸드폰을 보고 있던 쿤은 보도블럭이 무너진 곳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발을 디뎠다가 아차, 했다. 순식간에 몸이 기울었다. 쿤이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쿤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목을 잡아 확 뒤로 끄는 힘에 몸이 바로 균형을 잡았지만, 손목에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에 쿤이 낮게 아, 하는 소리를 뱉었다. 단순하게 손목을 잡았을 뿐인데, 상대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악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쿤이 본능적인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에게 잡힌 손목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자, 쿤의 손목을 잡았던 남자가 물어왔다. 그제야 쿤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를 낸 남자를 바라보았다.
장발의 갈색 머리를 하나로 올려 높게 묶은 남자는 머리 끝부터, 아니 머리는 갈색이었으니 어깨부터 발끝까지를 검은 색으로 차려 입고 있었다. 검은색 양복 자켓에 검은 와이셔츠, 검은 바지, 윤이 나는 검은 구두까지. 눈에 띄는 건 붉은 빛깔의 넥타이 뿐이었다. 무섭게 차려입었네... 싶었지만 나직한 목소리와 금빛 눈동자는 오히려 상냥한 편이었다. 쿤은 조금 떠름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감사해요, 안 잡아주셨으면 넘어질 뻔 했네요.”

“아니에요. 손목은 괜찮으세요?”

쿤은 이미 부어오른 손목을 바라보았다. 손목을 쥐어오는 악력이 상당히 세기도 했고, 한 번에 손목을 잡은 것만으로 성인 남자의 무게 중심을 되돌려 준 힘도 장난이 아니었다. 웬만한 사람들을 훨씬 웃도는 힘에 아직도 욱신거리는 손목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쿤은 마지막 남은 예의로 웃으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뼈도 얇고 근육도 적은 편이시네요. 아마 며칠은 아프실텐데, 제가 너무 세게 잡았나봐요, 죄송해요. 살짝 잡는다고 잡았는데...”

쿤은 제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네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살짝 잡았다니. 미심쩍은 눈초리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미안한 기색이던 남자는 힐끔 시계를 바라보더니 바로 급하게 가봐야한다고 이야기하고는 순식간에 뛰어 사라졌다. 뭐야, 이상한 사람이야. 쿤은 약하게 부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말대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당분간 아플 것 같았다.
쿤은 손목을 주물거리며 골목길을 벗어나 큰 거리로 나서 가벼운 음식과 붕대를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빠른 퇴근이 결코 하루 업무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쿤은 사온 붕대로 간단하게 손목을 감아 놓고, 소파 안 쪽 깊숙이 몸을 묻었다. 금방이라도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 티비 화면이 전환되면서 속보 헤드라인을 가진 뉴스가 흘러나왔다.
 
‘현재 ㅇㅇ 동의 ㅁㅁ 건물이 무너지면서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건물 붕괴와 함께 밑에서는 일부 조직들의 다툼이 일어나 인명 피해가 더 커지고 있는 상태이며, 건물 붕괴는 사고가 아닌 고의적인 테러로 의심...’

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보지 않아도 알겠군. 쿤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재빠르게 나갈 채비를 했다. 핸드폰과 열쇠를 집어 들면서 현관으로 나가며 쿤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쿤 어디야!! 지금 당장!

“ㅇㅇ 동?”

- 빨리! 지금 여기 서 사람들 다 가고 있으니까!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갈게.”

전화는 한시가 급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러대던 왕난의 성격답게 바로 끊겼다. 쿤은 빠르게 집 밖으로 뛰쳐나와 움직였다. ㅇㅇ 동이면 멀지 않았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쿤은 그제서야 투덜거렸다. 제길. 이럴 거면 그냥 서 사람들이랑 술이나 마시고 있을 걸.

ㅇㅇ 동은 난장판이었다. 건물의 붕괴가 문제가 아니었던 게, 아래에서 조직들 간의 다툼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진 사람들 하며, 아직도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쿤이 저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쿤!”

쿤을 발견하자마자 왕난과 이수가 다가와 곁에 섰다. 경찰측 인력이 동원되면 대부분 도망가기 바쁜데 이번에는 왜인지 다들 쉬이 물러서지 않는지라 경찰측과도 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래 보여. 난장판이 된 모습을 바라보며 쿤은 이마를 짚으려다가 붕대가 감겨 불편한 손목에 멈칫했다.

“쿤, 너 손목은 왜 그래? 벌써 한대 맞았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온 거 봐놓고서.”

“왜 다쳤냐니까!”

쿤은 왕난의 소리 지름에 가까운 질문에도 건성건성 대답하며 몸싸움이 벌어지는 한 가운데로 시선을 집중했다. 대부분이 치열하게 한 번 밀리고 한 번 나아가기를 반복하는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면 가운데 선 한 남자가 눈에 띄게 월등했다. 한 번의 발길질에 상대의 몸이 종잇장마냥 날아가 벽에 처박히는 모습이 여간 공포스러운 게 아니었다. 무슨 저런 무식한 힘을 가진 놈이 있어. 처음에는 월등하게 곁의 사람들을 쳐내는 실력에 눈이 갔다가, 이내 쿤은 더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로 올려 높게 묶은 장발의 갈색 머리, 검은 정장, 검은 구두. 뒤쪽에서 다가오는 기척에 뒤를 돌아선 남자의 목에 붉은 넥타이가 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아까 그 남자?

“야, 쿤, 대답 좀 해봐!”

“... 쟤가 그랬어.”

“어?”

“저기, 가운데. 붉은 색 넥타이. 쟤가 그랬다고.”

쿤을 바라보고 있던 왕난과 이수가 고개를 돌려 쿤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둘 셋이 한 번에 달려들어도 정확하게 명치를 가격하고 발로 짐짝 치우듯이 바닥으로 짓밟아 치우는 처세술이 잔인했지만 명쾌했다. 장난 아니네, 쟨 누구야? 이수가 혼잣말로 중얼 거리는 것을 들은 것 마냥 남자가 눈을 들었다. 온통 새카만 분위기를 홀로 밝히는 황금 빛 눈동자.
남자는 잠시 쿤과 이수, 왕난이 있는 무리 쪽에 시선을 주다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 왕난과 이수가 당황하는 찰나에 쿤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남은 애들 좀 처리해줘.”

“응?”

“쟤랑은 내가 잠깐 얘기 좀 할게.”

“쟤랑? 단 둘이?”

너 쟤가 방금 발로 사람 머리 깨는 거 못 봤어? 난리를 피우려는 왕난과 다르게 무언가 쿤이 생각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 이수가 조용히 왕난의 멱살을 끌어 갔다. 주변에 있다가 위험하면 올게. 이수 역시 쿤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는 눈치여도 곁을 비켜주었다. 저래봬도 쉽게 다치지는 않는 놈이었다. 저 주머니에 총이라도 들었겠지. 이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쿤과 남자를 바라봤다.

“아까 그 분이시네요. 경찰이실까하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지만, 정말 경찰이실줄은...”

전투 한복판에서 검은 복장과 갈색 빛 머리카락으로 눈에 가장 띄지 않는 빛을 하고 있던 남자와 다르게 쿤은 옅은 물빛 머리에 새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어서 단연 눈에 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금 전에 마주친 얼굴을 잊었을리가 없었다.

“넌 아까... 아니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는데. 아까는 이렇게 싸움이나 일으키려고 그렇게 급하게 갔어?”

“하하, 제가 누구냐는 질문은 좀 곤란하네요.”

쿤은 싸울 때의 분위기와는 생판 다른 사람마냥 환하게 웃어오는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현장 출동 경력이 몇 년인데,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붉은 색 넥타이, 그 끝이 가까이서 보니 미묘하게 반짝였다. 쿤의 시선이 넥타이 끝으로 향하자 남자는 손으로 넥타이 끝을 잡아 가렸다.

“이건 이름보다도 더 곤란한데, 눈치가 빠르신 분이네요.”

쿤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꾸 시간을 끌 이유가 있나?”

쿤이 총을 남자에게 조준했다. 남자는 당황하지도 않은 듯 쿤을 바라보는 눈빛이 여전히 올곧았다. 총을 눈앞에 들이대고 있는데도 남자는 말할 생각이 없는 것 마냥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빨리 말해, 이름.”

“그건 좀, 곤란해요. 그건 그렇고 잠깐 고개 숙이세요.”

쿤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가 곧장 발길질을 할 기세로 휙 다리를 올리는 남자의 움직임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발길질이 쇠 파이프를 쳐냈다. 쿤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조직원 중 하나 인 듯한 사람이 쇠파이프를 놓쳐서 당황한 사이에 쿤은 총으로 남자의 손을 가격했다.

“뒤까지 처리하시기엔, 손목이 좀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쿤의 다친 손목 쪽으로 턱짓을 하며 웃는 미소가 상황이랑 어울리지가 않아 쿤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한 번 이름 혹은 소속을 밝히라고 총을 조준하려는 찰나, 쿤은 뒤에서 남자를 가격하려는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를 보고 바로 총의 조준점을 바꾸었다. 칼을 든 사내의 손에 총을 겨누자 남자가 흠칫 물러난다. 저긴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물러 나. 경찰의 말에 사내는 짜증스러운 듯이 어물대다가 쿤이 다시 한 번 총을 조준하자 급하게 물러났다.

“다음에 보면 바로 체포감이야.”

이름도, 소속도 모르지만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수확은 됐다. 몽타주로 찾을 수 있겠지 싶어 쿤은 물러서기로 했다. 쿤은 남자의 뒤에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모양을 보면서 걸음을 돌리려고 했다. 쿤이 돌아서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말했다.

“제 이름은, 쥬 비올레 그레이스.”

체포해가지 않은 값은 이걸로 갚을게요. 친절하신 경찰관님, 다음에 봬요. 쿤이 다시 그를 보기 위해 뒤를 돌았을 때, 남자는 어느새 멀찍이 멀어진 상태였다. 이름이, 쥬 비올레 그레이스. 쿤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여러 번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름은 중요한 단서였다. 비올레라고 말한 사내가 물러나자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왕난와 이수가 금방 주위로 다가왔다.

“어떻게 된거야? 쐈어? 쏜거야?”

“조용히 좀 해 봐. 안 쐈어. 그리고 일단 이름은 알아 냈어. 서로 돌아가자.”

“이름?”

“쥬 비올레 그레이스.”

당장 찾아봐야 해. 급하게 차량으로 올라타는 쿤을 따라 왕난과 이수가 차에 올라타고, 차가 출발했다. 핏빛으로 번지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비올레는 멀찍이서 급한듯이 떠나는 경찰차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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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쿤] 명암(明暗) 의 적(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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